‘재벌집 막내아들’은 단순한 재벌 드라마를 넘어, 회귀 판타지와 복수극의 요소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서사로 2022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화제작이다. 윤현우라는 현대의 중간관리직이 억울한 죽음 이후 1980년대의 ‘순양그룹’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단순히 회귀의 통쾌함을 넘어 한국 재벌 구조와 자본주의의 민낯을 정면으로 비춘다. 화려한 연출과 배우 송중기의 몰입감 넘치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은 이 작품은, 단지 복수를 위한 서사가 아닌 시스템 자체를 질문하는 드라마로 남았다.
회귀 판타지의 힘
회귀 서사는 이제 한국 드라마와 웹툰에서 흔한 설정이 되었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 회귀를 매우 정교하게 서사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주인공 윤현우는 순양그룹의 충직한 직원이었으나 배신당해 죽음을 맞고, 이후 1987년으로 돌아가 그룹의 창업주 아들로 환생한다. 이 회귀는 단순히 ‘다시 살아난다’는 수준이 아니라, 주체적 복수의 시작점이자 시대를 바꾸는 가능성으로 활용된다.
드라마는 회귀를 통해 '만약 내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이라는 판타지적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1980~2000년대 한국의 정치, 경제, 금융사까지 촘촘하게 반영한 배경 설정은 시청자들에게 현실감을 안기며 서사의 깊이를 더한다. 도준이 IMF 이전 시점부터 미래를 알고 경제를 선점해 나가는 과정은 회귀물의 쾌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기회란 정보에 달려있다’는 현실의 날카로운 인식을 드러낸다.
또한 이 작품은 회귀물의 한계를 극복한다. 대부분의 회귀물이 개인 복수에 집중하는 반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주인공의 심리 변화, 시대와의 상호작용, 가족 내 권력 재편 과정까지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도준은 단지 복수에만 집중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연민과 시스템 개혁의 욕망도 동시에 품는다. 결국 이 회귀는 개인의 성공을 위한 판타지가 아닌, 사회 구조를 다시 설계하려는 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벌 권력투쟁의 정밀 묘사
‘재벌집 막내아들’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가족간 상속 분쟁을 넘어서 재벌가 내부 권력 구조를 아주 현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순양그룹의 총수 진양철 회장은 전형적인 1세대 창업주로, 가족 구성원을 기업의 부품처럼 다룬다. 그의 뒤를 이어 순양을 차지하려는 형제들과 손자들 간의 싸움은 비단 드라마적 긴장감뿐 아니라, 실제 한국 재벌가에서 벌어져 온 ‘형제의 난’과 유사성을 보여준다.
진도준은 막내아들이자 회귀자로서, 모든 이의 약점과 미래 정보를 갖고 있어 판을 주도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단순한 승리자가 아니라 복잡한 감정과 인간관계의 변화를 겪는다. 그는 할아버지 진양철과 유일하게 진심으로 소통하는 인물이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점점 순양그룹의 핵심으로 진입한다. 그러나 그 역시 재벌이라는 시스템에 발을 들인 이상, 점점 윤리적 경계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재벌가가 어떤 논리로 후계자를 결정하는지, 기업이라는 공간이 가족 간 권력 다툼의 도구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투자, 계열사 인수, 언론 플레이, 정치 연계까지 등장하는 각종 권력 싸움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그 안에서 ‘막내아들’이라는 위치는 외부자이자 내부자인 이중 포지션으로 작동하며, 시청자에게 권력 구조의 본질을 낱낱이 드러낸다.
복수서사의 새로운 방향
‘재벌집 막내아들’은 복수극이지만 단순한 ‘카타르시스형 응징’에서 벗어난다. 윤현우는 배신당하고 죽은 뒤 되살아난 인물이지만, 그 복수는 단순히 가해자 처벌이 아니라, 그들이 얽혀 있는 구조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이는 이 드라마가 복수의 본질을 단지 감정이 아닌 ‘시스템 변화’로 확장해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도준의 복수는 매우 전략적이다. 그는 감정적 분노로 움직이지 않고, 철저히 계획하고 시간을 기다린다. 언론을 활용하고, 기업 주가를 조작하며, 유망한 산업에 미리 투자해 입지를 강화하는 등 고전적인 복수극과는 결이 다르다. 이 과정은 시청자에게 ‘통쾌함’ 이상의 긴장감을 주며, ‘지능적인 복수극’의 정석을 보여준다.
또한 도준은 복수를 하면서도 인간적인 고뇌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과거의 사람들과 얽히고,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 윤현우였던 그는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도준의 행동을 지배한다. 이 내면의 균열은 단순한 복수와 성공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며, 주인공을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완성한다. 결국 이 드라마는 ‘복수의 끝은 무엇인가’, ‘정의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